4·9통일평화재단
로그인   |   회원가입   |   Korea   |   English

재단사업 게시판


 
작성일 : 13-04-02 17:21
장준하선생 '유해감식결과보고대회'와 '겨레장' 행사 진행
 글쓴이 : 사료실
조회 : 1,962  
그동안 4.9통일평화재단은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에 참여하여 '타살'이라는 장준하선생의 사인을 규명하는데 노력해왔습니다. 이를 자세히 보도한 신문기사로 그 소식을 대신합니다.
 
 
장준하선생 '겨레장' 진행
 
                                        

 
 
다시 잠든 장준하... "정부 진상규명만 남아"
 
광복군 소속 독립투사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투쟁을 벌이다 숨진 채 발견된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7개월여 만에 다시 땅속에 묻혔다. 지난해 8월 장 선생 묘소 옹벽이 폭우로 무너져 이장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감식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 발견돼 타살 의혹이 재점화됐다. 앞서 1975년 장 선생이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 경찰이 '추락사'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사인 논란은 계속돼왔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장준하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대책위의 의뢰를 받아 정밀 감식을 벌인 이정빈 서울대 의 법의학 명예교수팀은 지난 26일 "장 선생이 머리 가격에 의해 숨진 뒤 추락했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대책위는 28일부터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해 그간 치르지 못했던 장 선생의 장례예식을 '겨레장'으로 진행했다.

장례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9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장 선생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부인 김희숙씨 등 유족 20여 명이 참석했다 한명숙·정세균·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 이부영·노회찬 전 의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등과 시민 300여 명도 함께했다.
 
장 선생의 장남 호권씨, 차남 호석씨, 손자 현욱씨는 태극기를 두른 관 앞에서 절을 하며 예를 갖췄다. 추모객들도 정숙한 분위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애도했다.
 
유족과 추모객들은 발인제를 마치고 운구차량을 따라 서울광장에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까지 추모행진을 했다. 장 선생의 영정을 든 손자 현욱씨 뒤로 대형 태극기와 100여 개의 만장 깃발이 이어졌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 운구행렬이 도착하자 곧이어 노제가 열렸다. 서대문형무소는 장 선생이 유신 시절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곳. 유족과 추모객들은 잠시 묵념하며 그를 추모했다. 몇몇 유족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추모의 말을 통해 "그동안 우리는 장 선생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 지하에서 장 선생이 얼마나 억울함에 사무쳤을까 싶다"며 "이제 감식 결과 진실이 밝혀지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깨진 두개골의 외침에 정부는 정의롭고 공명차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장 선생 사인의 진실규명이야말로 통합과 화해의 새정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추모의 말을 전한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은 "장 선생의 의문사가 타살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아직도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의문사가 많이 남아있다"며 "이번 기회에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다른 의문사 사건들의 진상도 다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회장은 "땅 속에 묻혀있던 장 선생을 비롯해 유가족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아픈 삶을 지내왔는가"라며 "이제 장 선생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를 믿고  편히 영면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윤인중 목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이 자리를 끝으로 장 선생은 편히 하늘나라로 가실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사인을 둘러싼 진상을 밝혀내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노제를 마친 뒤 유족들은 영정을 들고 장 선생이 투옥됐던 형무소 독방을 둘러봤다. 장준하 선생의 유해는 이날 오후 2시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 안장됐다.
 
 
 
장준하선생 사인조사위 '타살'로 결론내리고 보고대회 가짐.

 
 
"장준하 선생, 머리를 가격 당해 숨진 뒤 추락했다"
 
        


 
유신독재에 저항하다 1975년 숨진 채 발견된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해 “머리를 가격당해 숨진 뒤 추락했다”는 부검결과가 나왔다. 사망 당시 장준하 선생의 사인은 등산 중 실족사로 결론 났지만, 그동안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번 부검결과는 장 선생의 유골을 처음으로 직접 정밀감식해서 나온 것이어서 향후 장 선생 사망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단초가 될 전망이다.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26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의대 이정빈 명예교수가 진행한 정밀유골감식 결과를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의 두개골 함몰은 추락에 의한 골절이 아닌 외부 가격에 의한 손상”이라며 “가격을 당해 즉사한 뒤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이 추락에 의해 머리뼈가 함몰됐으면 반대편인 왼쪽 안와(안구 주위 뼈)가 함께 손상돼야 하는데 안와는 깨끗하다”며 “이는 추락보다 외부 가격에 의해 머리뼈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추락하면 어깨 뼈가 손상돼야 하고 출혈도 있어야 하는데 장 선생의 시신에서 어깨 뼈 골절은 전혀 찾을 수 없고 1975년 검안 사진을 보면 출혈도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머리뼈를 가격한 물체는 두피 손상 부분이 좁은 것을 고려하면 망치보다는 아령이나 큰 돌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장 선생은 1975년 8월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정부는 당시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장 선생의 사인을 실족해 추락사한 것으로 결론 지었다. 그러나 유신정권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장 선생의 죽음에 많은 의혹에 제기돼 왔다. 이후 1993년 민주당 조사위원회,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장 선생의 사인을 규명하려 했으나 시신을 직접 부검하지 못해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장 선생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신의 머리뼈 손상이 확인돼 타살의혹이 제기됐다. 유족 측은 사건 재조사와 진상 규명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 않았다. 이에 이에 장준하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 민주통합당 장준하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사인조사 공동위를 구성, 지난해 12월부터 유골 정밀감식 조사를 진행했다.
 
민주당 장준하선생 의문사 진상규명회 유기홍 의원은 “뒷머리 가격에 의한 타살임이 명백해졌다”면서 “이를 기화로 여·야가 함께 진상조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