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통일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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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사업 게시판


 
작성일 : 13-03-28 13:49
우홍선 김용원 장석구 선생 묘역 참배를 다녀왔습니다.
 글쓴이 : 사료실
조회 : 2,168  

 

지난 3월 26일(화) 경기도 파주와 마석에서 1975년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돌아가신 ‘우홍선ㆍ장석구ㆍ김용원 선생 묘역 참배’행사가 38주기를 맞아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고인의 유족과 동지들, 사월혁명회, 추모연대, 4.9통일평화재단,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 고양시민회, 금정굴유족회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가 되자, 경기도 파주시 낙원공원묘지에 서울과 경기도에서 온 참배객들이 속속히 도착하였다. 먼저 우홍선선생의 묘역을 찾은 이들은 준비한 제물로 제상을 차리고, 민자통 김한덕의장이 헌화하였다. 첫 추모사로 나선 범민련 김영옥선생은 "4.19공간에서 통민청 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조국이 분단되어 있으니 6.25동란 같은 민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을 막으려면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선생님의 뜻을 이어가려는 제2의 우홍선 제3의 우홍선이 나와야 합니다."고 말하였다.
 
이어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명예의장은 다음과 같이 고인을 추모했다. "생전의 우선생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남민전의 이재문․신향식선생들은 우선생님과 4.19혁명시기부터 같이 활동했던 분들입니다. 남민전은 인혁당 열사를 '8인열사'라 칭하며 모시려 하였습니다. 인혁당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뜻을 이으려 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 "만약 이분들이 살아계셨더라면 아마도 현재 조성되고 있는 남북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 투쟁하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별히 이번 추모제에는 고양시민회 장건상 대표와 금정굴 유족회 마임순 회장과 회원들이 참석하였다. 마회장은 "이렇게 가까운데 묘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찾아뵙질 못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여 앞서 말씀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 금정굴 학살의 슬픔처럼 가슴이 아파옵니다. 앞으로 금정굴 유족회를 잘 운영하여 아픈 과거사들이 잘 풀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홍선선생의 묘소 참배를 마친 참배객들은 바로 위쪽에 위치한 장석구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묘역에서 4.9통일평화재단 박중기 이사는 "장선생은 기자였습니다. 조용수의 민족일보와 한국일보 대구일보 영남일보에서 일했던 분입니다. 이분이 인혁당사건에 연류된 것은 당시 인혁당사건의 수배자중에 한 사람을 감춰 줬다는 이유였습니다. 원래 몸이 약한 분은 아니었는데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받아 몸이 몹시 약해졌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장선생이 고혈압으로 쓰러졌는데, 교도관들이 병원에 늦게 모시고 가는 바람에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라며 고인과 얽힌 아픈 사연을 소개하였다.
 
두 열사의 묘역참배를 마친 참배객들은 마석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여 차량으로 이동하여 마석모란공원에 도착한 참배객들은 준비한 제물로 제상을 차리고 헌화하였다.
 
김용원선생과 같이 활동했던 김정위 전 외대부총장은 김용원선생과의 고교시절 암장활동을 같이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용원이가 작년에 서울로 왔는데, 거기에는 큰 뜻이 있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인데 뭘 하겠냐고 말하지도 모르지만, 죽은 사람에게도 원한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처럼, 용원이도 뭔가 맺힌 것이 있어 그것을 풀어 보려고 온 것이다."라고 말한 뒤, "아마도 생전에 못 본 통일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올라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면서 고인의 혼을 위로하였다.
 
김용원선생은 지난 해 5월 고향 선산이 있던 경남 함안에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이장할 때 개묘를 하니, 선생이 묻힐 때 입었던 옷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월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은 "아마도 원한이 깊어 옷이 채 썩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고, 또 “매장당시 중정요원들이 매장지 까지 따라와 서둘러 매장하도록 강요하는 바람에 염도 제대로 못하고, 수인복을 입은 채 묻었을 정도로 당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는 말을 유족들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참배를 마친 참배객들은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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