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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실

 4·9통일평화재단
 
작성일 : 12-04-25 09:33
[성명서-37주기 발표] 와서 보라 인혁당사건이 본의 아니게 희생된 사건인가
 글쓴이 : 사료실
조회 : 1,615  
   인혁당_성명서.pdf (213.8K) [4] DATE : 2012-04-25 09:33:32
<2012년 4월 8일 인혁당 통일열사 37주기 추모제에서 발표된 성명서. 2012년 4월 9일자, 경향과 한겨레에 광고로도 실림.>

 성  명  서

      와서 보라. 인혁당 사건이 본의 아니게 희생된 사건인가

인혁당 사건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가 1974년 4월, 당시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민청학련을 북한의 지원을 받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씌워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구속 처형했던 사건을 말한다. 관련자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 그로부터 18시간도 채 되기도 전에 8명 전원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이 사형당한 1975년 4월 9일을‘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고, 국내에서도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 있는 판사, 검사, 중앙정보부, 청와대 관계자 그 누구하나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한 사람은 없다. 2007년 1월 23일, 서울지방법원 합의 23부가 인혁당사건 재건위사건 재심판결에서 8인의 사형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 33년 만에 그들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고 명예가 다소나마 회복되었다.

이보다 앞선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결과를 통하여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서 조작되었다고 밝혔다. 의문사위원회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도예종 등 23명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혁당 재건위를 구성, 학생들을 배후조종하고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사결과, 이를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범죄혐의는 모두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등을 위조하여 조작하였음이 확인 되었고, 사형 당한 분들의 활동에 대해서 모두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였다. 아울러 중앙정보부가 당시 박정희에게 인혁당 사건을 보고한 것도 밝혀졌다.

한편, 2005년 12월 9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권력자의 자의적 요구에 따라 수사방향을 미리 결정, 중앙정보부에 의한 고문과 이를 통한 증거조작, 공판조서의 허위작성, 진술서의 변조 등으로 사건 자체가 처음부터 조작되었으며, 실제로 인혁당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하였다. 이로써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사법살인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유신독재권력에 의한 계획적인 정권살인사건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 조사보고서는 인혁당사건 재건위사건으로 죽은 8명의 사형수들은 1974년 4-5월 체포된 이래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가족들과 면회를 갖지 못했으며, 사형장에서 했다는 최후진술조차 변조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당시의 언론은 도예종 선생이“조국이 공산주의 아래 통일되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 보고서는 1964년의 인혁당 사건과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모두 박정희, 신직수, 이용택으로 이어지는 권력라인에 의해 조작, 집행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의 형 확정 즉시 처형한다는 방침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국방부와 법무부 등의 긴밀한 협조가 그토록 신속하게 이루어져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인혁당 재건위 사건 가족들이 겪었던 수난과 고통 또한 이루다 필설로 말할 수가 없다. 이들은 사회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 친지와 친척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다. 이들은 남편의 구명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내 남편은 빨갱이로, 그가 간첩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다시는 구명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진술서를 몇 날 며칠 동안이나 강요받았다. 그 자식들은 빨갱이 자식이라 하여 목에 새끼줄을 매어 나무에 묶어놓고 빨갱이 자식이니 총살한다는 위협에 시달렸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혁당 재건위사건 관계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와서 보라.

오늘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인혁당 사건으로 숨진 여덟 분열사의 37주기를 맞아 그 분들에 대한 추모행사와 전시회를 서대문 형무소에서 열게 되었다. 민주시민들은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을 호소하면서, 현 시국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를 밝히는 바이다.

1. 우리 국민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4.11총선에 임하는 국민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오늘의 현상을 보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거듭 들어 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작태가 그러하고, 반민족, 반민주주의 독재자 박정희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 또한 그렇다.

2.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그동안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근간이 모두 무너져 내렸지만, 더욱 통탄할 일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철저하게 왜곡한 일이다. 아이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불행한 역사를 물려주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원죄임을 명심해야 한다.

3. 여덟 분 인혁당 관련 사형수들은“본의 아니게 희생된”사람들이 아니라,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유신정권의 조직적, 계획적인 정권살인의 희생자였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에게 역사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한줌이라도 남아 있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그 아버지의 죄과를 사과하고, 죽은 영령들과 그 가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여 마땅할 일이다. 우리는 그에게 말한다.

      “와서 두 눈으로 보라. 인혁당 사건의 그 처절한 흔적을”

                    2012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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