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통일평화재단
로그인   |   회원가입   |   Korea   |   English

공지사항


 
작성일 : 20-06-10 13:27
고 시노트 신부와 오글목사에 대한 국민포장 수여를 환영한다.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8  

고 시노트 신부와 오글목사에 대한 국민포장 수여를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19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명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이면서 한국 민주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시노트 신부와 오글 목사에 대해 국민포장을 전달한 것을 크게 환영한다.

 

고 시노트 신부(한국명 진필세)1929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메리놀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의 나이 서른한 살에 한국 인천교구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인천교구의 여러 성당에서 사목하면서 병원을 설립하고 섬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선을 도입하면서 한국 서민들의 애환에 함께 했다. 그러던 중 1974년 미군 친구로 부터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가톨릭이 나서 인혁당 사형수 구명운동에 나서 줄 것을 부탁한다. 이후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 월요모임의 신부들과 함께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사형을 선고받은 가족들과 함께 정부에 항의하다가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되었다. 특히 197548일 대법원에서 인혁당 사형수에 대한 형이 확정되자 불법재판이며 인권침해라고 강력히 항의하였으며, 다음날 9일 예상치 못한 사형이 집행되자 응암동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개최하려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불허했다. 이에 그는 경찰에 강력히 항의하다 사지를 들려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1975430, 박정희 정권은 오글 목사에 이어 시노트 신부마저 국외로 추방한다. 추방당한 후에도 그는 인혁당 사형수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계속 전개했으며, 그 일환으로 한국대사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6월 항쟁이후 14년만인 1989년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해외 민주인사 초청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메리놀 상주신부로 한국에 머물다가 2014년 지병으로 선종했다.

 

오글 목사(한국명 : 오명걸) 1929년 펜실베니아주 핏케언에서 태어나 복음주의연합 형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0년 한국 인천에서 목회생활을 하면서 도시산업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산업선교를 위해서는 먼저 공장에 취업해서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강사시절인 1974년 가을 시노트 신부로 부터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들의 구명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10월 첫 주에 열린 목요기도회에서 처음으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후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인혁당 조작 사실을 전했으며, 그것이 기사화되자 박정희 정권으로 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19741214일 이날도 인권회복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가던 중 경찰에 연행되어 그날로 추방당한 것이다. 그는 비행기 트랩에 오르면서 한국말로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미국으로 추방당한 후에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6월 항쟁이후 1989년 추방당한지 15년 만에 한국을 찾아 <기적의 가운데> 출판식을 가졌다.

 

1960-70년대 한국의 민중들은 박정희 독재정권과 무분별한 산업화로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인혁당 사건은 독재정권을 연장하려는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고문조작사건이었다.

 

오늘 국민포장을 받은 시노트 신부와 오글 목사는 이러한 시기에 한국 민중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돌봐주고 위로해 준 참 종교인들이었다. 또한 인혁당 사건의 조작 소식을 듣고 외국인 선교사들로서는 나서기 힘든 정치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종교인의 자세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노트 신부와 오글 목사는 사형수들의 구명운동에서 적극 나섰으며, 더불어 가장인 남편들을 잃고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사형수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지인들에게 후원금을 요청하기도 하고,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고, 자녀들의 진학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 두 사람으로 부터 인혁당 조작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월요모임과 목요기도회에 참여했던 국내외 신부들과 목사들 그리고 신자들까지 함께 나서 구명운동을 벌였다.

 

억울하게도 197549일 불법 사형이 집행되었지만, 이들의 구명운동이 있었기에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에는 대통령직속기구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밝혔으며, 2005년에는 가해기관인 중앙정보주의 후신 국가정보원이 자체 조사를 통해 인혁당 사건과 더불어 민청학련 사건 조작되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는 법원의 재심이 시작되었으며, 2007123일 법원은 인혁당의 무죄를 판결하기에 이르렀다. 실로 사형집행 32년 만에 이루어진 진실찾기였다.

 

마지막으로 두 종교인에 대한 국민포장 수여 소식을 듣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늦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포장의 한사람인 시노트 신부는 2014년에 선종했으며, 또 한 사람인 오글 목사는 병상에 누워 있어 표창 소식을 들어도 얼마나 기뻐할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또 건강했을 때 이 소식을 들었다면 더욱 기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늦었지만 이 반가운 소식에 함께 했던 사형수의 유가족들과 사건 관련자들 그리고 구명운동에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함께 환영하고 있음을 밝힌다.

 

2020610

 

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 문정현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김형태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